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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2025)​

나는 정리정돈을 좋아한다. 작년 말부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침구를 가지런히 개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책상 위 물건들은 일정한 위치로 되돌아가야 마음이 놓이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옷걸이에 옷을 걸어 놓아야 한다. 일상의 작은 규칙. 습관일까, 강박일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원래 있던 자리에 돌려놓는 것’에 꽤 집착했던 것 같다. 본가에 있는 TV 장 위에 흰색 벽걸이 선반이 달려 있는데, 그곳엔 항상 나의 애착 물건들이 쌓여져 있었다. 잠들기 전엔 꼭 선반 위에 물건을 되돌려놓고, 그것들이 각자의 자리에 있어야만 마음이 편했다. 가끔 휴대폰 갤러리로 들어가 불필요한 사진을 정리하기도 한다. 이것은 단순한 정돈인 동시에 어지럽혀진 감각과 시간을 다시 구조화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정리의 과정에선 늘 예상치 못한 ‘틈’이 생긴다. 예컨대 많은 사람들은 정리정돈을 하는 과정에서 갑작스레 추억여행을 떠난다. 아무런 짐도, 마음의 준비도 없이 갑자기 떠나는 여행이다. 과거의 기억이나 감정을 떠올리며 추억을 되새긴다. 언제 누가 찍었는지 모를 과거의 나를 사진 속에서 발견했을 때 그 안의 나는 내가 기억하는 나와 조금, 어쩌면 완전히 다르다. 기억하지 못하는 내 모습은 오히려 새로운 이야기처럼 말을 걸어온다. 그 틈새에서 나는 작업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그래서 나는 종종, 기억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언제나 불완전하고 유동적인 것. 떠올리려 할수록 달라지고, 재구성되며, 때로는 깊이 잠긴 채 닿을 수 없는 것이 되는. 나는 과거의 한 시점에 머물러 있던 단순한 기록을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며, 그 안에서 왜곡되고 뒤섞인 감각들을 포착한다.

작업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되짚는 일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다. 오히려 그때의 나에 대한 허구적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가깝다. 하나의 몸에서 여러 개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 목소리들은 서로 어긋나고 충돌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기억과 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성큼 다가온다. 결국 내가 주목하는 것은 기억과 허구가 만나는 지점, 그리고 그 틈에서 솟아나는 낯섦이다. 작업의 주요한 모티브가 되는 나의 과거 사진, 과거의 이야기는 질문을 던지는 매개로 작동한다. 지각하지 못하였던 서사를 다시 끌어내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은 어떤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행위가 아니라, 기억이 진실이 되어가는 과정을 관찰하는 일이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구성하고, 작은 조각들을 엮어 하나의 장면이 되도록 붙잡는다. 그 장면은 언젠가 또 다른 기억 속에 스며들 것이다. 늘 그랬듯이.

I like to be tidy. Since the end of last year, as soon as I wake up in the morning, I have started my day by folding my bedding neatly. Things on my desk have to go back to a certain position to be relieved, and I have to hang clothes on the hanger as soon as I come home. Small rules of daily life. Is it a habit or an obsession? I think I was quite obsessed with "putting it back where it was" since I was very young. There are white walled shelves above the TV set at my home, where my attachments were always piled up. I always felt at ease when I put things back on the shelves before I went to sleep and had them in their respective places. Sometimes I go into my phone gallery and organize unnecessary photos. This feels like a simple arrangement and at the same time restructuring my dizzy senses and time.
In the process of organizing, there is always an unexpected 'gap'. For example, many people suddenly go on a trip to memory in the process of organizing. It is a trip that suddenly leaves without any luggage or preparation of the mind. I reminisce about memories or emotions of the past. When I find myself in a picture of the past that I don't know when and who took it, the me in it is a little, maybe completely different from the one I remember. Rather, my appearance, which I cannot remember, talks to me like a new story. In that gap, I find clues to work. So I often wonder what memory is. Something that is always incomplete and fluid. The more I try to think of it, the more it changes, reconstructed, and sometimes deeply locked and unreachable. I look back at the simple record that remained at one point in the past with today's gaze, and capture the distorted and mixed sensations in it.
The works begins with looking back on 'the self I don't remember'. But it's not just a representation. Rather, it is more of a process of creating a fictional story about me at that time. Multiple voices are heard from one body. They sometimes deviate and collide with each other, but in the end, they break the boundary between memory and truth and come to us in a completely different form. In the end, what I pay attention to is the point where memory and fiction meet, and the unfamiliarity that rises out of the gap. My past photos and stories, which are the main motifs of the work, act as a medium to ask questions. It becomes a passage for bringing out an unrecognized narrative again. For me, this whole series of processes is not an act of telling any truth, but observing the process of memory becoming truth. In the process, I reorganize myself and weave small pieces together to become a scene. The scene will someday permeate into another memory. As always.

​작가노트(2024)​

<그 여자의 방은 비어 있었고>, Single-channel video, Color, Mono, 58sec, 2024

이것은 2021년 2월 19일 아빠와 떠난 경주 여행-이자 아빠의 출장길에 따라 나선 나- 에 대한 이야기와 그것을 다시 기억하는 나의 기억을 토대로 한다. 차 안에서 국화빵을 나눠 먹으며 나는 아빠는 엄마랑 어떻게 만나게 되었어?라는 질문을 하였고 아빠는 과거의 기억- 거짓일지도 모르는 것-을 꺼내어 답변해 주었다.

아빠의 말에 따르면, “엄마가 예전에 서울에서 과학 선생님으로 일했거든. 아빠는 계속 영덕에 있었고. 근데 과학고 애들 오는 것처럼 그때도 학교에서 체험학습으로 여기에 많이 왔었어, 응. 그때 엄마가 애들 데리고 여기로 왔던 거야. 엄마가 다시 서울로 돌아가고 나서 아빠한테 같이 찍었던 단체사진을 편지에 넣어서 보내줬어. 인화사진으로. 그때부터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지.”라고 하였다. 그로부터 1 년이 지난 뒤 엄마에게 사실확인을 하였으나 돌아온 엄마의 답변은 이러하였다. “(질색팔색을 하며) 무슨 소리야. 그런 적 없었어.”

과거를 기억하는 몇 가지 방식이 있다. 나의 기억에 의존하는 것. 기억을 되돌아보는 과정에서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어릴 적 찍은 사진을 보는 것. 혹은 누군가의 말에 의존하여 잃어버린 부분을 새롭게 구축하는 것. 아빠와의 대화를 회상하며 만들어진 <그 여자의 방은 비어 있었고>는 진실일 줄 알았던, 나의 과거를 입증해 줄 수 있는 증인이 현존함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역사가 얼마든지 상실되거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억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결국 기억은 진실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없다. 그 불완전함 속에서 다시 엮고, 엮고, 엮어서 이어나갈 뿐.... 어쩌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증거가 아닌 사실을 의심하게 만드는 시작점일지도 모른다. 거짓말쟁이 아빠? 아니면 엄마? 아니면 두 사람 모두? 끝없이 분기하는 그들의 틈새에서 그저 나는 다른 삶을 상상하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작가노트(2023)​

<다시 어디로 10-28>, Single-channel video, Color, Mono, 28min, 2023

가끔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다. 나는 내 방을 엄청 좋아한다. 우리 집은 원래 할아버지가 살던 집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집 전체를 리모델링 했고 그 이후로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우리 집에 모셔서 같이 살았다. 내 방은 원래 부엌이었다. 지반이 꺼져 있고 천장이 낮아서 들어왔을 때 굉장히 아늑하다. 나는 키가 작은 편인데 내 방은 마치 이곳은 너의 공간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아늑하고 잠이 잘 온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침대에 누워 있으면 잠이 잘 안 온다. 분명 내 공간인데 갑자기 내 공간이 아니게 된다. 공기 흐름이 바뀌고 마치 남의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불안하다.

그래서 나는 내 방을 나와 관련된 여러 가지들로 채웠다. 침대 위엔 내가 누울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인형을 올려 놓았다. 책상엔 초등학교때부터 흔적이 남아 있다.

나는 혼잣말을 자주 한다. 어릴 때 인형을 항상 가지고 놀았다. 종류는 바비인형, 곰인형 아니면 이상한 캐릭터 인형 외 기타 등등. 오빠들은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집에 잘 없었고 엄마 아빠는 일하느라 바빴다. 그래서 집에서 구슬치기 하면서 놀거나 그림 그리거나 인형 가지고 혼자 놀았다.

아주 옛날이다. 몇 살이었는지는 기억 안 난다. 엄마랑 나랑 싸우고 있었는데 엄마가 엄청 큰 목소리로 나도 아주 지겨워 죽겠어, 그냥 확 죽어 버리면 되는데 뭐 하러 사는지 알아라고 말했다. 그 말만 기억이 나고 다른 건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 확실한 건 꿈은 아니었다. 그 말을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조금 슬프다. 왜냐면 엄마가 그런 말을 하면서 나한테 상처를 좋게 때문이 아니라 엄마가 왜 그렇게 느끼는지 어떤 감정이었는지 이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처없이 떠도는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던 순간은 아주 예전부터였다. 본가는 그 흔한 프랜차이즈 하나 없는, 도시 생활을 하다 내려와 보면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을 만한 동네였다. 예고로 진학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열여섯 살이 되기 직전 서울에 있는 외삼촌네 집에서 일 년 조금 넘는 시간을 하숙하게 되었다. 예고는 진학하지 못했고, 결국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며 2학년이 될 때까지 멀리 떨어져 있는 미술 학원을 통학하며 다녔다(후회는 없다). 3학년으로 학년이 올라갔을 땐 외삼촌의 소개로 분당에 있는 미술 학원으로 가게 되었다. 다시 외삼촌네 집에서 하숙을 하며 외로움은 점점 커졌다. 20살이 되던 해 무사히 원하던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2년 동안을—정확하게 따지자면 1년 반이었지만–기숙사에서 지내게 되었다. 코로나 덕분인지 때문인지 1인 1실이라는 규칙이 새롭게 생기며 혼자 방을 써야만 했다. 그토록 원한 자유였지만 외로운 자유였다. 가끔 가다 본가로 내려가더라도 잠자리나 불편하거나 마음의 한 구석이 요란을 피우는 등 모종의 이유로 그 외롭고 이상한 느낌은 곁을 떠나질 않았다. 알 수 없는 마음이 너무 많았다. 3학년이 되고 나서 기숙사 지원은 탈락했고 결국 이모가 살고 있는 집에서 현재 얹혀 지내고 있다. 동생이 쓰던 방을 내가 쓰게 되었는데, 그 방 안에 가만히 누워 있다 보면 밖에서 동생들과 이모의 오가는 말소리가 들린다.

어느 한 날은 책을 사러 공원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서너 명 정도 되는 할아버지들이 공원 벤치에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 바둑판은 있었으나 바둑알을 두는 통은 없었는지 반찬 용기에 바둑알을 하나하나 꺼내고 있었다. 문득 옆에 가서 앉아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광경을 가만히 서서 구경하고 싶었다. 가끔은 한세월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보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더 가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그들과 나의 거리를 정확하게 짚어낼 수 없어서인지, 나와 공통분모를 이루는 부분만이 극대화되어 보여서인지, 완벽한 타인이라는 점에 안도감을 느껴서인지는 몰라도 그런 미묘한 감정이 드는 이유는 도통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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